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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주시 대평리,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

🕰️ 1. 마을의 이름—‘대평(大坪)’의 유래

대평리는 원래 ‘한들’ 또는 ‘큰들’이라는 뜻으로, 넓고 평탄한 들판을 가리킵니다.
조선 전기에는 인근 여러 마을(서신대리, 침곡리, 가을동리 등)이 흩어져 있다가, 임진왜란 이후 행정구역으로 대평리로 통합되었어요


🔍 2. 고인돌과 청동기 유적의 보고

1953년 경지정리 중에 우연히 고인돌이 발견되며, 1967년 이후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습니다.
1975년 1999년에는 대대적인 연합 발굴이 이루어졌어요

  • 옥방 지구: 집터 400여기, 밭 유적, 환호(도랑), 목책(울타리), 석기·옥방 공방 흔적
  • 어은 지구: 신석기~청동기 시대의 주거지·무덤·밭 유적 포함

🏠 3. 마을 사람들의 삶과 사회 구조

  • 복합적 주거지: 장방형·방형 주거지와 긴 노지(작업장)가 공존했어요
  • 계급 구조 확인: 무덤군과 공방 유적이 있어 특정 계층 존재 추정
  • 농경사회 기반: 대규모 밭과 도랑 등 농경시설 발견

💎 4. 옥(玉)의 생산지 대평

  • 이 지역에서는 벽옥, 천하석 같은 고급 옥 장신구가 제작되었고
  • 공방에서는 각종 석기, 숫돌, 흙구슬 등이 나왔어요
  • 남강을 통한 광역 교역망에 속했던 중요한 생산지였습니다

🏛️ 5. 현대의 보존과 활용

  •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이 대평리 남강변에 세워졌고
    • 야외 전시장엔 움집·목책·무덤 복원
    • 3D 영상관 등 전시·교육 공간도 갖추어졌어요
  • 행정 변화
    • 1914년 대평면으로 편입
    • 1995년 진주시와 통합돼 도농 복합형 진주시에 소속

📝 마무리 정리

시대주요 내용
조선 전기여러 촌락이 하나의 대평리로 통합
1950~60년대경지 정리·댐 공사 중 선사 유적 노출
1975~1999년네 차례의 정식 발굴 진행
청동기시대옥방에서 옥 방공방 발견, 복합 농경사회 구조 확인
현재박물관 및 복원 유적으로 마을 역사 보존 중

📌 참고 유적/명소

대평리 유적 전시관 (청동기문화박물관)

대평리 옥방·어은 지구: 집터, 무덤, 환호, 공방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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